저번주 토요일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편의점에 잠시 다녀오는 길. 제법 긴 턱수염에 세월의 서리가 내려앉은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께서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허리에 찬 작은 가방, 스마트폰, 작은 가방 사이로 빼꼼히 보이는 500ml 짜리 생수병.
한 눈에 보기에도 대리운전 하시는 기사님이셨어요.
"말씀 좀 여쭤보겠습니다. 여기서 버스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되나요?"
"아..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되는데 그렇게 가깝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드리면서 뭔가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구요.
이 추운 날씨에 이 길로 쭉 가면 큰 대로가 나오지만, 그 길은 멀고 험하죠. 그 험한 길을 저는 알려드리는 겁니다.
마치 제가 잘못한 것 하나 없지만 고생길로 기사님을 안내하는 느낌.
그래서, 제가 태워드리겠다고 말씀드리니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너무 감사하다고 하시더라구요.
기사님을 조수석에 태우고 시동을 걸고 출발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나가시면 어디로 가실 거냐고 여쭤보니 근처의 XX동으로 가신다고 하셔서, 그럼 10분 정도면 가니 거기까지 태워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카카오 대리운전 어플로 왔다고 하시길래 카카오는 수수료를 많이 떼어가냐고 여쭤보니,
단거리는 정액으로, 장거리는 퍼센트로 떼는데 다른 업체와는 달리 보험료도 포함이고 기타 수수료가 전혀 없어서 카카오 어플로 오는 콜은 서로 잡으려고 하신다더군요.
대기업이 중소기업, 자영업 시장을 잡아먹는다고 뉴스에선 연일 보도하지만 이런 걸 보면 영 나쁜 구석만 있는 건 아닌가봅니다.
대리운전이라는 게 당신 스스로 떳떳하지가 못해서 동네 사람들 보기 좀 그래서 유니폼 지급 같은 건 좀 그렇다고 하시더라구요.
정말 진상 손님이라도 만나면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지만 또 다음 날 되면 벌이 생각에, 다 잊어버리고 나온다는 말씀이 슬프게도 느껴지구요.
길지 않은 시간에, 연륜이 가득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제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목적지까지 다 가서,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계속 돈을 주시려고 하시더라구요.
한사코 사양하며.. 정말 괜찮습니다! 기사님 이까지 오셔서 이걸 주시면 어떡하세요. 저는 이 참에 드라이브도 한 번 하고 그런거죠!
했더니 큰길로 걸어나가서 택시를 타도 탔을 거라며 너무 고마워서 그런다며 3천원을 주시길래, 계속 거절을 하다가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지갑 속에 있는 3천원을 보니, 뭔가 죄송스러운 마음도 들고, 저 꼬깃꼬깃한 지폐의 주름이 더 꼬깃꼬깃하게 느껴졌던 날이었습니다.
전국의 모든 대리기사님! 오늘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일상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재인 양산 자택 유병언이 원래 소유주? 등기부등본 확인! (29) | 2017.08.15 |
---|---|
오늘의 독서 -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외 3권 (0) | 2017.02.17 |
영화 로빙화 DVD 구입했습니다! (+줄거리, 주제가, 魯氷花, The Dull-Ice Flower) (0) | 2017.02.16 |